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파트 1: 전이 보고 없음
숨을 쉬는 감각부터 낯설었다.
공기 속에 먼지와 곰팡이 섞인 냄새, 어딘가 풀리지 않은 습기, 목 뒤로 느껴지는 차가운 돌 바닥. 서윤태는 눈을 떴다. 벽이 보였다. 석조, 거칠게 깎인 회색 벽면에, 손때 묻은 무명 커튼. 커튼 사이로 고요한 햇빛이 찢어지듯 스며들고 있었다.
천장엔 촛불이 흔들리는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도 전자식이 아니라, 진짜 촛불.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 그는 일어났다. 누가 그의 책상에 종이 더미를 내려놓고 있었다.
"이게 오늘 분기별 성역 전선 피해보고입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말투는 습관처럼 공식적이었다. 서윤태는 목을 돌렸다. 병사 복장을 한 청년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품에는 두꺼운 종이철이 끼워져 있었고, 그의 허리춤엔 검 대신 큼직한 펜촉 장식이 매달려 있었다.
“…뭐?”
그는 혼잣말처럼 뱉었다. 청년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자리로 돌아갔다. 회의실이었다. 크고 둥근 원형의 목재 탁자. 열두 개 정도의 의자가 반원 형태로 놓여 있었고, 탁자 중앙엔 ‘알노르 왕국 전략기획실’이라는 문장이 금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명패를 봤다. [서윤태 - 실무담당관]
이름은 분명히 맞았다. 그리고, 직책도… 어째서인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불편했다. 팔걸이는 너무 낮고 등받이는 각이 맞지 않았으며, 엉덩이 밑에 종이 서류 몇 장이 접혀 있었다. 그는 그걸 꺼내 정리하려다, 멈칫했다.
분기별 사망 병사 수 - 성역 전선 (동부 사령부)
총 피해 인원: 1,152명
문서 작성자: 실무관 베이든 (휴직 중)
서명자: 없음
검토자: 없음
보고 경로: 없음
보존 위치: 창고 7번지 (추정)
그는 턱을 괴고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탁자 위 종이컵… 아니, 작은 찻잔을 들고 살짝 입에 댔다. 차였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는 어중간한 풀 향이 느껴졌다.
"회의 시작하지. 시간 맞췄잖아?"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했다. 덩치 큰 남자가 망토를 휘날리며 앉았고, 이어서 중년 여성이 수첩을 펼쳤다. 귀족복장을 한 사람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모두 각기 다른 무늬와 색깔, 과하게 장식된 복장. 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손엔 하나같이 종이 한 장도 없었다.
“오늘은… 음, 동부 전선 보고부터지? 전략기획실 담당은 새로 왔다면서?”
“저기 앉은 분입니다.”
누군가 조용히 말하며 서윤태를 가리켰다. 그는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대신, 책상 밑의 가죽 가방을 열어 손에 익숙한 것을 꺼냈다.
노트. 펜. 계산기.
회색 플라스틱 전자 계산기, 키패드가 낡았지만 작동은 이상 없었다. 어떻게 여기 왔는진 모르겠지만, 그에겐 늘 있던 업무 세트였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또 야근인가?”
회의실의 촛불은 그대로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제자리에 앉아 웅성거렸다. 누군가 ‘대체 왜 피해 보고서가 도착하지 않았느냐’고 불평했고, 누군가는 '현장엔 실무자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다'며 동조했다. 그 누구도 보고서를 읽으려고 하진 않았다.
서윤태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첫 메모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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