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도 야근은 싫다》 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Part 2)

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파트 2: 관료들의 말, 실무자들의 눈

"좋습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말하는 자는 남작 작위의 귀족이었다. 키가 작고, 말끝을 늘리며 말을 천천히 뱉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책상 위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시작을 선언했다.

"우선, 동부 성역 전선. 어… 이번 분기 보고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실무관 베이든이 부상으로 후송되었습니다. 보고는 대체 인원이 작성 중입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은 아직 공식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거군요?” “그렇습니다, 각하.”

“그렇다면, 이번 피해 규모에 대한 구체적 판단은 유보하고, 전과에 대한 집계는 잠정 수치로—”

숫자는 없었다.

말은 길었고, 단어는 화려했다. ‘유보’, ‘검토’, ‘잠정’, ‘재협의’. 서윤태는 펜을 들고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틀었다. 회의 테이블을 따라 시계 방향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화려한 장식이 붙은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말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익숙했다.

‘정확한 수치를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 실무관이 부상당했다고 말하지만, 누구도 그를 병문안 가지 않았다.’
‘피해를 ‘유보’하는 동안, 누구도 전선 상황을 파악하지 않는다.’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군수부 소속의 기사 출신 실장, 헤르디아였다.

“무기 보급 상황은 심각합니다. 마법주입형 무장은 올해만 30% 이상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층부에서 예산 승인 속도가 느려진 탓이며—”

“그건 예산처 탓이 아니오. 지난 회계분기에도 집행 잔여분이 남았지 않소.”

재무부 장의 반박. 말이 오가지만, 사실상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며’, ‘다른 부처의 책임이며’, ‘구체적 정보는 실무자가 정리 중’이라 말하고 있었다.

“현재 대응책은?” “상황을 면밀히 검토 중입니다.” “그 상황이라는 건 대체 누가 보고한 건가?” “실무관이... 작성 중입니다.”

그리고 또 침묵.

서윤태는 책상에 손가락을 탁, 하고 한 번 두드렸다. 다들 그가 뭔가 말할 줄 알고 쳐다봤지만, 그는 고개만 숙인 채 펜촉을 눌렀다.

1. 피해 보고 없음
2. 보급 문제 → 예산 승인 지연
3. 전선 대응 계획 없음
4. 실무자 부상 → 대체 인원 없음
5. 누구도 책임 지지 않음

메모장이 빠르게 채워졌다. 그의 글씨는 날카로웠고, 틀림없이 실무자의 글씨였다.

그는 이제 귀족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말들은 이미 음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 병사들은 정신력이 강하오. 설령 장비가 부족하더라도…” “전선 사기만 확보된다면, 충분히 저 마족의 침공을—”

‘사기’, ‘정신력’, ‘전통’, ‘영광’...

서윤태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어두운 사무실과 고요한 새벽의 공기가 떠올랐다.

책상에 엎드려 자살했던 29살의 계약직, "그냥 좀 더 버티지 그랬냐"던 부장의 목소리, 그걸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과거의 자신.

그 기억이 이 낯선 회의실 위에 덮여 왔다. 돌로 된 벽, 천장, 무겁고 흐릿한 조명.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구조.

바뀐 건 복장뿐이다.

서윤태는 메모장을 덮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조용한 침묵은, 회의실의 그 어떤 말보다도 더 선명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