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에서도 야근은 싫다》 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Part 5)

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파트 5: 이세계 첫 보고서

회의는 이상하게 조용히 끝났다. 누구도 폐회를 선언하지 않았고, 종이나 망치 소리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각자의 하급자를 부르거나, 어깨를 으쓱이며 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소란은 없었다. 침묵이 있었고, 눈치가 있었다. 권력자들이 회의에서 졌을 때 보이는 전형적인 퇴장 방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나면서, 속으로 계속 생각한다. ‘지금 이걸 어떻게 되갚을까?’

서윤태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빈 찻잔을 굴리듯 손끝으로 돌리고 있었다. 보고서를 테이블 중앙에 놓고, 그 위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했다.

“기록 마법이 가능한 실무자라…”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발걸음과 함께 다가온 건 에일라 비엔. 희끄무레한 은발을 묶어 내린 정보 마법사. 서윤태는 그녀를 올려다봤다.

“당신, 문서 마법을 그렇게 정교하게 다루는 건... 단순히 마법적 감각만으로는 불가능해요. 훈련받은 티가 나요.”

“훈련은... 꽤 길었죠.” 그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거긴, 보고서가 목숨이었거든요.”

에일라는 고개를 기울였다. “전장?”

“아뇨.” 그는 컵을 내려놓았다. “회의실.”

한 박자 늦게, 에일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러더니 그녀는 피식, 웃었다.

“재밌는 농담이네요.”

서윤태는 웃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거.” 에일라가 테이블 위 보고서를 가리켰다. “정식 보고 체계를 거치지 않고 작성된 비인가 문서예요. 왕국 문서법 제8조, 14조 위반. 이대로 두면 당신 곧 감사 들어올 거예요.”

“그렇겠죠.”

“근데 왜 냈어요?”

그 말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찻잔을 천천히 뒤집었다. 그 안엔 차가 식은 채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때, 멀리서 무겁고 천천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단단한 구두, 그리고 권력의 리듬이었다.

드론스 바르시안. 왕국 내무성 장관. 머리칼은 백발에 가까웠고, 망토는 화려했지만 단정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보고서를 내려다봤다.

몇 초간 침묵. 그리고, 고개를 들고 말했다.

“…잘 쓰는군.”

“감사합니다.”

“이 문서가 공식 문서로 채택되면, 지금 회의에 참석했던 7명의 귀족 중 3명은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겠지.”

“그럴 겁니다.”

“그럼… 그 3명이 가만히 있을까요?”

“아니겠죠.”

드론스는 짧게 웃었다. “정말 실무자다운 대답이군. 정직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말도 있지.”

그는 문서를 넘기지 않았다. 읽지도 않았다. 그저 ‘그 문서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보고, 뒤로 돌아섰다.

“이제, 당신은 실무자 이상의 위치에 서게 될 거요. 그걸 견딜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 회의실을 나섰다. 조용히, 마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듯.

에일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뭐 느끼는 거 없어요?”

“…하나 있네요.”

“뭔데요?”

서윤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미소 없이, 눈빛만 웃는 얼굴로.

“보고서로 싸우는 건, 여기서도 마찬가지군요.”

에일라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보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는 뜻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었다.

회의실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그 테이블 중앙엔 여전히 한 장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불편하게, 정확하게, 그리고 아주 조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