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회의실은 관이다
파트 3: 그 문서, 지금 작성 중입니다
“…거기 실무담당관, 지금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계시오?”
정적 속에서 의외로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서윤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실 안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 꽂혔다는 건 느껴졌다.
“아니, 보고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실무관님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회의 참석은 처음이신가?”
질문은 도발처럼 들렸다. 말투는 정중했지만, 말미에 실린 어조는 분명히 ‘자신을 소개하라’는 권위자의 명령이었다.
서윤태는 천천히 펜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보고서 작성 중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회의실 안의 온도가 눈에 띄게 바뀌었다. 몇몇 귀족이 서로 눈을 마주치며 낮게 웅성댔고, 어떤 이는 키득 웃었다.
“이보시오, 보고서 작성은 사전에 완료되어야 하오. 회의 도중에 뭐… 음, 회의록입니까?”
“아닙니다.” 서윤태는 조용히 말했다. “피해 보고서입니다. 공식 문서.”
“지금 이 자리에서…?”
서윤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책상 위의 종이뭉치에서 단 한 장을 꺼냈다. 마치 이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듯, 종이 위로 푸른빛 마법진이 부드럽게 퍼졌다. 그의 손에 들린 펜촉이 공중을 따라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글자가 종이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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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 인명 피해 보고서]
작성일: 즉시
관측 위치: 동부 성역 전선
작성자: 실무담당관 서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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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사망자 수: 1,152명 (확인된 신원 기준)
부상자 수: 2,304명
지휘관 손실: 중령 1명, 대위 3명
보급 실패 건: 12건
마법 탄소결합 부패율: 32%
사기 지수: 41% (극저하 상태)
─────────────
비고: 본 보고는 후방 병참단의 재고정리 목록 및 치료소 리포트,
마법 메시지 잔류파 분석을 근거로 작성되었음.
─────────────
“그게… 어떻게…”
누군가가 낮게 중얼거렸다.
“그건… 아직 집계가 안 끝났다고 하지 않았소?” “분석 기준은 뭡니까? 자, 그건—” “보고된 게 아닌데 어떻게 저런 숫자를…”
혼란은 빠르게 번졌다. 그러나 서윤태는 펜을 내려놓고 그들을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 시선은 무례하지 않았지만, 완벽하게 낯설고 위협적이었다. 마치 그 자신이 보고서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이건 잠정 수치가 아닙니다. 실제 치료소에서 치료받은 인원, 소환 마법 메시지의 응답률, 마력 반응이 끊긴 전장 기록 — 모든 데이터는 이미 존재합니다. 단지, 아무도 수고스럽게 그것들을 합치지 않았을 뿐입니다.”
“…문서 마법이라는 게… 저런 식으로 사용이 가능했나?”
에일라가 조용히 혼잣말하듯 말했다. 정보통신 마법사인 그녀조차, 그 종이에 찍힌 글자를 보며 당황한 눈빛이었다.
“그 보고서는 아직 공식 승인되지 않았소.” 드론스 장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우리 조직엔 보고 경로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명하달, 그리고 적법한 경유. 그것을 무시하고—”
“상명하달은, 상이 말을 할 때만 가능한 구조입니다.”
서윤태의 말에 장관의 입이 잠시 멈췄다.
“지금까지의 20분 동안, 숫자를 말한 사람은 저뿐입니다.”
그 순간 회의실 안의 모든 의자가 정지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다채로웠지만, 공통적으로 불편해 보였다.
서윤태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종이를 조용히 회의 테이블 중앙에 내려놓았다. 그 종이 한 장이, 칼보다 더 조용하고 날카롭게 모든 사람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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